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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9-20 11:20
[예화] 예화 2
 글쓴이 : 한나
조회 : 6,202  
쉰 한번째 이야기
            잃은 것, 얻은 것
점심시간이 끝날 때 쯤 민철이는 운동장에서 지갑을 주었습니다.민철이는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지갑을 주머니에 넣고 교실로 들어왔습니다.한참이 지난 후 미진이가 지갑을 잃어버렸다며 어쩔줄을 몰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민철이는 모른 척 하고 앉아 있었습니다.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민철이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미진이의 당황한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친구들이 다 자기를 쳐다보는 것같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반대로 이 돈이면 축구공도 살 수 있고, 햄버거도 사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났습니다.밤새 고민하며 잠못 이룬 민철이는 다음날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미진이의 책상에 지갑을 넣어 두었습니다.미진이가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면서 민철이는 오래간만에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형제 자매들에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8:12)

민철이가 지갑을 주워서 자기가 가지려고 할 때 얻은 것은 양심의 가책이고, 다시 주인에게 돌려줄 때 얻은 것은 마음의 평안이었습니다.민철이가 주운 지갑이 미진이의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난 후 민철이가 미진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을까요?성경은 우리가 형제 자매들에게 죄를 짓는 것은 곧 예수님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하나는 자기의 편리를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며 사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남을 돕는 일로 평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민철이가 지갑을 돌려주고 나서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었던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쉰 두번째 이야기
      누구에게나 한가지씩은
교회 앞 마당에 목련나무, 사과나무, 전나무 이렇게 세 그루가 심겨져 있었습니다.봄이 되자 목련꽃들이 화사하게 피었습니다.목련은 다른 나무들에게 꽃도 피우지 못하는 나무들이라고 놀려댔습니다.가을이 되자 이번에는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사과나무는 열매도 맺지 못하는 나무는 나무도 아니라고 으시댔습니다.어느 새 찬바람이 불어 크리스마스를 며칠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이었습니다.사람들은 전나무에 여러가지 장식물을 달아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습니다.다른 나무들은 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습니다.하지만 전나무는 으시대거나 다른 나무들을 놀리지 않았습니다.누구에게나 한가지 씩은 잘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에게는 수치가 따르지만, 겸손한 사람에게는 지혜가 따른다.                  (잠언 11:2)

교만이란 상대를 무시하고 자기 자신만을 잘났다고 내세우는 것을 말합니다.우리 주위를 보면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듯한 친구들이 있습니다.그것은 우리들이 교만한 마음으로 그를 판단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공부는 반에서 꼴찌를 하더라도 운동을 잘하는 친구가 있고, 운동은 좀 못하더라도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가 있습니다.아니 지금은 아무것도 잘 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장차 큰 일을 맡아 해낼 친구도 있는 것입니다.사람이 제각기 받은 달란트를 잘 다듬고 키워서 하나님안에서 귀하게 쓰이면 되지, 그 크기의 크고 작음은 아무런 문제가 아닙니다.겸손하게 자기를 낯출 때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쉰 세번째 이야기
        하나님께서 시키셨어요
그 날따라 지하철에 사람들이 많았습니다.규민이는 용케 자리를 잡아 앉아 있었는데 어느 역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아기를 업고 손에는 기저귀 가방을 들고 차에 오르는 것이 보였습니다.규민이는 얼른 일어나 아주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가방을 들어 선반에 올려 드렸습니다.다리는 좀 아팠지만 기분은 좋았습니다.한참을 가다가 아주머니께서 내리시려고 하자 규민이는 선반위의 가방을 내려다주며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아주머니는 “학생, 정말 고마워요.”라고 말했습니다.규민이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하나님께서 시키셔서 하는 일인걸요. 저한테 고마워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고마워하세요.”
그리고 말을 하든지 일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요.(골로새서 3:17)

우리가 가끔 범하는 실수 중의 하나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우리가 가로채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그런데도 우리는 모든 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다 이룬 것 같이 뻐기기만 하다가 힘든 일이 닥쳐 좌절하고 쓰러질 때면 그때서야 하나님을 찾곤 합니다.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주예수의 이름에 의지하여 하고 일을 이루든지 못 이루든지 그 결과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오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만 주시는 분이시니까요.
쉰 네번째 이야기
            까치밥
가을이 되어 할아버지와 희수는 감나무에 감을 따기로 했습니다.오후내 감을 따느라 힘도 들고 땀도 많이 났지만 덕분에 감을 세 광주리나 딸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할아버지는 감나무마다 감을 서 너 개씩 남겨두고 따지 않으셨습니다.“할아버지, 아까운데 저것도 다 따시지 않고 왜 남겨두셨어요?” 라고 희수가 물어보자 할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저건 까치밥이라고 하는 건데, 저렇게 남겨 둬야 까치들이 감을 따먹고 똥을 누면 그곳에 씨가 퍼져 다시 감나무가 자라는 거란다.”그제서야 희수는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이제는 남겨둔 감들이 무척 정겹게만 느껴졌습니다.
포도를 딸 때에도 모조리 따서는 안된다.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도 주워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사람들이 줍게, 그것들을 남겨두어야 한다.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다(레위기 19:10)

우리의 농부아저씨들이 까치밥을 남겨두는 풍습이 있는 것처럼 성경에서도 추수한 열매를 다 거둬가지 말고 어려운 이웃에게 가져가도록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이처럼 우리의 선조들은 어려운 때에도 이웃간의 정만은 잊지 않고 살아왔던 것입니다.내 배가 부르면 다른 사람들도 배부른 것으로 잘못 생각하기가 쉽습니다.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어려운 이웃들이 많습니다.점심을 굶는 학생들이 십만명도 더 된다고 합니다.까치밥을 남겨두는 마음으로 포도 송이를 다 거둬들이지 않는 마음으로 우리 이웃을 돌봐야 겠습니다.

쉰 다섯번째 이야기
            굴 껍질
행운이와 예슬이는 방학을 맞아 어촌에 사시는 할아버지댁에 놀러 갔습니다.할아버지는 대문 밖으로 보이는 갯펄을 가리키시며 저곳에 가면 아주 아름다운 것들이 있을테니 가서 찾아보라고 하셨습니다.둘은 갯펄을 거닐며 한참을 돌아다녔습니다.“에이, 아무것도 없잖아요. 할아버지 왜 거짓말 하셨어요.” 행운이가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투덜거렸습니다.잠시후 예슬이는 손에 굴 껍질을 들고 들어왔습니다.“그게 뭐가 이뻐, 투박하기만 하고 보기 싫은데”행운이가 또 투덜거렸습니다.그러자 예슬는 굴의 속을 볼 수 있게 들었습니다.굴 속은 무지개빛 예쁜 무늬로 정말 아름다웠습니다.할아버지는 예슬가 그 아름다운 것을 발견한 것이 무척이나 흐뭇했습니다.
여러분은 머리를 치장하거나, 금붙이를 달거나 옷을 차려 입거나 하는 겉치장을 하지 말고,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3-4)
아름다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은 외모나 치장이 아니라 속마음입니다.우리가 겉모습만 보고 외면하는 조개 껍질도 속을 보면 아주 아름다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다른 사람을 대할 때 주의를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쉽게 판단한다면 아주 잘못하는 행동입니다.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참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굴 껍질 속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쉰 여섯번째 이야기
        세상에서 쌓아 놓은 것
같은 날에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하늘나라 입구에 도착한 두 사람은 하늘 나라 천사들로부터 자신이 영원히 살게 될 곳으로 안내를 받았습니다.그런데 두 사람 다 자신이 지낼 곳이 아닌 것 같다며 천사를 찾아 왔습니다.관직을 이용해서 돈을 모은 부자가 간 곳에는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 하나 있을 뿐이었습니다.그런데 가난했지만 자기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기를 좋아했던 사람이 간 곳에는 잘 가꿔진 정원이 딸린 아름다운 집이 있었습니다.천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세상에서 자신의 것으로 쌓아둔 것은 하늘나라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하지만 남에게 베풀고 나누어 준 것은 그것의 백배로 하늘나라에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부자는 땅을 치며 후회를 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습니다.
너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나라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마가복음10:21)

예수님을 따르는 데는 재물이 그리 소용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무런 재물도 소유하지 말고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것은 곧 자신의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아도 예수님께서 직접 돌보신다는 뜻입니다.하지만 요즘은 재물에 가리워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주위에 우리보다 더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기꺼이 줄 수가 있어야 합니다.
하늘 나라의 상은 바로 이런 자들의 것입니다.

쉰 일곱번째 이야기
          참 기독교인
늦게 예수님을 믿게 된 아버지가 다른 지방에 사는 세 아들을 불러 주일마다 교회에 나갈 것을 당부했습니다.세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서 그 주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한 달이 지난 후 아버지는 세 아들을 다시 불러 모아서 교회 나간 후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물었습니다.큰 아들은 자신의 삶이 보다 경건해졌고 사업도 잘된다고 말했습니다.둘째 아들은 덕분에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서 더 이상 외롭지 않다고 말했습니다.그런데 세째 아들은 보이질 않고 대신 편지가 와 있었습니다.그 편지에는 요즘 마을의 장애자들과 노인들을 돌보느라고 도저히 올 수가 없었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아버지는 세 아들중 교회에 가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 받은 아들은 세째 아들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야고보서 2:26)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말은 나태한 신앙 생활에 채찍이 됩니다.성경에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들이 그냥 가르침으로만 끝나서는 안되고 곧 실천이 되어야 함은 그것이 바로 참 신앙인의 자세이고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교회에서의 행동과 교회 밖의 생활이 다른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됩니다.그것은 하나님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면 그것이 곧 실천이 되어야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배웠으면 생활 중에 감사의 조건들을 찾아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깨달음이 곧 행동의 변화로 나타날 때만이 진정으로 변화 받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쉰 여덟번째 이야기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많은 승객을 태운 배가 폭풍우를 만나 심하게 흔들렸습니다.승객들은 구명보트를 찾았으나 폭풍이 너무 심하여 그마저도 소용이 없어지자 제각기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하지만 폭풍은 그칠 줄을 모르고 오히려 번개까지 치면서 바람이 더 심해졌습니다.모두들 겁을 먹고 실의에 빠져 있는데 한 소녀가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그러자 얼마 안있어 폭풍이 그치고 멀리서 육지가 보이는 것이었습니다.승객들은 기쁨의 탄성을 질렀습니다.육지에 내린 후 한 사람이 소녀에게 무어라고 기도를 했는지 물었습니다.소녀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어요.”
“나의 아버지, 내가 마시지 않고서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는 것이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마태복음 26:42)

사람들은 제각기 소원을 빌었을 겁니다.폭풍이 멎게 해달라고한 사람도 있었을테고, 육지가 곧 나타나게 해 달라고한 사람도 있었겠지요.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방법을 미리 준비해놓으셨던 것입니다.그러기에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가장 필요했던 것입니다.기도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참뜻을 알고자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예수님께서도 기도하실 때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빌었던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쉰 아홉번째 이야기
                촛불
종정이는 어머니와 백화점에 다녀오는 길에 마주오는 장님과 마주쳤습니다.종정이는 옆에 가는 것이 싫어서 어머니의 팔을 잡아당겨서 멀리 떨어져서 걸었습니다.저녁이 되어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 앉았을 때였습니다.갑자기 정전이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자 종정이는 겁이 났지만 아버지께서 곧 촛불을 켜셔서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그 때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종정아 우린 잠시 정전이 되어도 이렇게 불편한 데 평생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어렵고 힘이 들겠니? 그런데 우리들은 그런 사람들을 돕지는 못하고 오히려 멀리했으니 그들은 더 힘이 들었을거야. 우리가 그들에게 촛불이 되어주는게 어떻겠니?” 어머니의 말에 가족들은 모두 박수를 치며 찬성했습니다.그때 다시 전기가 들어와 방안이 환해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압니다.    (로마서 8:28)

방안에서 눈을 감고 가만히 오분만 있어보세요.보이지 않아 불편한 것도 불편한 것이지만 조금은 무서운 생각도 들게 될 겁니다.행하게도 우리 주위에는 평생을 앞을 보지 못하고 살아야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창세기에 보면 소경과 귀머거리까지도 하나님께서 뜻이 있으셔서 만드셨다고 되어 있습니다.그 뜻은 아마도 건강한 눈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을 돌보며 화목하게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정전이 되어 어두운 방안에 촛불을 켜는 심정으로 우리가 그들에게 촛불이 되어 주어야 하겠습니다.우리는 다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순번째 이야기
          오아시스 이야기
메마른 사막에 비가 내렸습니다.빗방울들은 제각기 바다로 가는 꿈을 꾸었습니다.바다에는 친구들도 많고 물고기들과 해초들을 키우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뜨거운 모래를 뚫고 지하로 스며들어 어두운 땅속을 헤치고 계속 흘러갔습니다.며칠이 지난 후 빗방울들은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나왔습니다.하지만 그 곳은 바다가 아니라 작은 웅덩이었고 실망한 빗방울들은 자기들을 사막에 내려준 구름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그 때였습니다.저 멀리서 낙타를 탄 상인들이 다가와서 물을 마시기도 하고 물통에 물을 긷기도 했습니다.방울들은 무척 기뻤습니다.비록 바다에는 가지 못했지만 더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그곳은 바로 오아시스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한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이 그에게 죄가 됩니다. (야고보서 4:17)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직업을 갖고 싶어하고 명예를 얻기를 좋아합니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자신을 꼭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우린 기꺼이 그 일을 해야 합니다.바다로 가고 싶었던 빗방울이지만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여행자들의 목을 축여 줄 수 있었기에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사람들은 누구에게나 한 가지 씩의 잘하는 일이 있습니다.그것을 선한 일에 사용한다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겠지만 악한 일에 사용한다면 죄가 됩니다.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 보고 그것을 선한 일에 사용해야겠습니다.





예순 한번째 이야기
          어항 속의 물
토요일 오후 주신이는 금붕어를 보고 있다가 어항 속의 물이 너무 지저분해 보여서 물을 갈아주기로 했습니다.물을 빼내고 유리를 닦은 다음 새 물을 넣고 나니 어항이 새것처럼 변했습니다.금붕어들도 기분이 좋아보였습니다.저녁에 아버지께서 퇴근하셨을 때 주신이는 자랑하고 싶어서 어항을 아버지께 모여드렸습니다.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어항 속의 물이 다시 뿌옇게 되어버린 것입니다.광호는 속이 상했습니다.아버지는 어항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더러운 물만 바꾼다고 해서 어항이 깨끗해지지는 않는단다. 모래속에 묻혀있는 더러운 것들이 다시 그 물을 더럽히게 되니까. 어항을 깨끗하게 하려면 모래속을 먼저 깨끗하게 만들어야지.”주신이는 다시 어항을 청소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새들이 거기에 깃들고, 황새도 그 꼭대기에 집을 짓습니다. 높은 산은 산양이 사는 곳이며, 바위 틈은 오소리의 피난처입니다.          (시편 104:17-18)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지금 너무도 더럽혀져서 사람도 나무도 동물들도 모두 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새들은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찾아 떠나고 강에는 물고기들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우리가 마실 물마저 안심하고 마실 수가 없습니다.쓰레기 안버리기, 나무 안꺽기 정도로는 더럽혀진 지구를 살릴 수가 없습니다.어항 속의 모래를 다 청소해야 물이 깨끗해지는 것처럼 바다 속, 땅 속, 하늘까지 다 청소해야 합니다.그래야지만 새들이 돌아오고, 다람쥐가 산에서 뛰어 놉니다.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게 지으신 이 하늘, 이 땅을 다시 되살리는데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휴지를 줍고, 재활용품을 사용하며, 세제를 안 쓰는 일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 하나 실천해나가야 이 지구를 살릴 수 있습니다.

예순 두번째 이야기
              욕심
어느 마을에 아주 게으른 청년이 한 명 살았습니다.어느 날 그 청년에게 한 스승이 찾아 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자네에게 천만원을 그저 준다면 자네는 그것으로 무엇을 하겠나.”청년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렿게 대답했습니다.
“천만원 가지고는 조금 부족한데요. 이천만원을 준다면 몰라도....,”스승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 청년의 집에서 나와버렸습니다.그 청년에게 이천만원을 준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시험을 당하는 것은 각각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서, 꾐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야고보서 1:14-15)

꿈은 클수록 좋은 것이라고 합니다.하지만 욕심과 꿈을 혼돈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아무런 노력도 없이 허황된 꿈을 꾸고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욕심이 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자람도, 남음도 없이 우리의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욕심을 버리고 우리의 주어진 형편에서 최선을 다 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참 평안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

예순 세번째 이야기
              청지기
한 마을에 동네 사람들로부터 선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는 부자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이웃마을의 구두쇠 노인이 그 부자 노인을 찾아왔습니다.“난 당신이나 별 다를 바 없이 살아 왔다고 생각하는데 왜 나는 구두쇠라고 따돌림을 당하고 당신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지 모르겠소. 뭐 귀한 물건이라도 숨겨둔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면 좀 알려주시오. 나도 그것을 사게 말이오.”구두쇠 노인의 말에 부자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특별히 숨겨둔 것은 없소. 단지 나는 내게 있는 재산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지요. 그래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위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재산을 쓴답니다.”‘내가 평생 일해 모은 재산이 내것이 아니라니, 그리고 그것을 이웃을 위해 사용하다니’ 구두쇠 노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그 후로도 구두쇠 노인은 평생을 따돌림을 당하며 사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두 자기가 받은 은사를 따라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관리인으로서, 서로 봉사하십시오 (베드로전서 4:10)
부자 노인에게는 있고 구두쇠 노인에게 없는 것은 바로 청지기 정신이었습니다.청지기란 하나님의 직분 맡은 자라는 뜻입니다.내 가진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자라는 뜻입니다.내 몸이 하나님의 것이라면 내가 함부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내가 가진 재산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낭비할 수가 있겠습니까?내게 주어진 능력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 바로 청지기의 자세입니다.하나님의 청지기로 살아가세요.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예순 네번째 이야기
        웃음으로 상대해 보럼
동호가 밖에 나갔다가 씩씩거리며 들어왔습니다.옆집 철이가 먼저 욕을 하는 바람에 같이 욕설을 하며 싸움을 했다고 했습니다.아버지는 동호를 앉혀 놓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동호야. 앞으로는 철이가 욕을 하면 넌 웃음으로 상대를 해보렴. 그러면 철이도 달라질거야.”“아니, 욕을 듣고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딨어요?” 동호는 아직도 분이 안 풀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그렇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못 박은 로마 군인들 마저도 용서하셨단다.”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나서부터 동호는 철이가 욕설을 하면 웃으며 고운 말만 했습니다.철이가 욕을 하지 않게 된 것은 그 후 며칠 뒤의 일이었습니다.
따뜻한 말은 생명나무와 같지만, 가시 돋힌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 (잠언 15:4)

사람들이 범하는 실수 중 가장 많은 경우가 바로 말에 의한 실수입니다.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사랑이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는 생명나무와도 같다고 합니다.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은 친구가 있다면 먼저 다가가서 따뜻한 말을 건네 보십시오.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늘 웃음으로 대해 보십시오.
언젠가 그 친구가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올 때가 있을 겁니다.하나님을 믿는 친구들은 말 한마디에서도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순 다섯번째 이야기
            부지런한 자
젊은이가 열심히 땅을 파고 있었습니다.그 곁을 지나가던 노인이 그 사나이에게 물었습니다.“젊은이, 여기서 무얼하고 있소?”“예, 우물을 파고 있는 중입니다.”젊은이는 연신 땀을 닦으면서 대답을 했습니다.“이곳은 강과는 거리가 멀어서 물이 나오지 않는 곳이니 헛수고 하지 말고 다른 데를 파보는 게 어떻겠소?” 라며 노인이 충고를 했습니다.“나는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물은 땅 속에 있을테니까 어디라도 열심히 파기만 하면 분명 물이 나올 것입니다.”노인은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그리고 그 젊은이는 끝내 물을 발견하지 못한 채 그 곳을 떠나버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속량하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당신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디도서 2:14)

우리 주변에는 부지런하고 매사에 열심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하지만 악한 일에 열심을 낸다면 그것은 오히려 열심이 없는 것만 못한 것이 되고 맙니다.예컨데 자기 집과는 반대방향으로 걸어가면서 집으로 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우리가 어떠한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하는지는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져 있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 이웃을 돕는 일, 전도하는 일,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일등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열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세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대로 갚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순 여섯번째 이야기
      장애인, 예비 장애인
전쟁이 끝나자 아들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어머니는 너무나 기뻐서 어서 집으로 달려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친구와 같이 있는데 그 친구가 팔을 하나 잃었어요. 그리고 그는 고아여서 돌아갈 집도 없거든요. 어머니, 그 친구와 함께 살 수 있을까요?”“얘야, 그 친구 사정은 딱하다만, 그런 불구자와 평생을 같이 살 수는 없지 않겠니. 그건 너무도 어렵고 힘든 일이란다.아들은 힘없이 전화를 끊었습니다.그 다음날 집으로 전화가 왔습니다.“당신 아들이 건물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했으니 와서 데려가라는 전화였습니다 병원에 도착한 어머니는 오열하고 말았습니다.아들의 주검은 팔이 하나 없는 상태였습니다.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이런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십시오.(갈라디아서 6:2)

만일 아들의 팔이 없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비록 불구지만 아들과 함께 살 수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마찬가지입니다.우리 주변의 많은 장애인들이 만일 우리의 부모 형제라면 그렇게 외면하거나 피하지는 않을 겁니다.아니, 오히려 힘든 것이 있으면 도울려고 할 것입니다.우리가 지금 당장 몸이 건강하다고 해서 장애인들을 무시하거나 외면한다면 우리가 장애인이 된다고 해도 똑같은 대접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장애인의 반대말은 정상인이 아니라 예비 장애인인것입니다.하지만 장애인이든 예비 장애인이든 하나님 안에서 모두 한 형제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예순 일곱번째 이야기
            단 한 명이라도
점심시간이 되자 모두들 도시락을 먹기에 바빴습니다.그렇지만 집이 가난하여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아이들도 있었습니다.“오늘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학생 있으면 선생님께로 와요. 선생님이 김밥을 많이 싸왔으니 선생님 것을 나눠 줄께요.선생님의 이 말이 끝나자 몇 명의 아이들이 앞으로 나왔고, 선생님은 김밥을 나눠 주기 시작했습니다.“선생님, 자기 도시락이 있는 아이들도 김밥을 받으려고 거짓으로 나왔어요. 선생님 김밥 주지 마세요.”한 아이가 소리쳤습니다.“그래도 괜찮다. 이 중 한 명 이라도 도시락을 안 싸온 학생이 있다면, 난 그 학생을 위해서 모두에게 김밥을 나눠 줄 수도 있단다.”말을 마치신 선생님은 다시 김밥을 나눠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었으면, 그는 아흔아홉마리를 산에다 남겨 두고서, 길을 잃은 그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마태복음 18:12)

선생님은 점심을 굶는 아이들을 위해 김밥을 싸오셨습니다.그런데 거짓으로 김밥을 먹으려는 아이들에게 김밥을 주지 않기 위해 모두에게 김밥을 주지 않는다면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아이들은 점심을 굶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그래서 선생님은 김밥을 달라는 아이들 모두에게 김밥을 주신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그러기에 단 한 사람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아낌 없이 주시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마저도 말입니다.우리도 그런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되겠습니다.

예순 여덟번째 이야기
                시계
종민이는 어제 본 시계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하지만 돈이 조금 모자라서 심부름을 하고 받은 돈을 조금씩 조금씩 모았습니다.드디어 돈이 다 모여서 종정이는 시계를 사러 가게로 향했습니다.그런데 가는 도중에 길거리에서 울고 있는 친구를 보았습니다.그 친구는 시골에서 올라 왔다가 지갑을 잃어버려서 집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종민이는 몇번을 망설이다가 시계 살 돈을 그 친구에게 주었습니다.그러자 그 친구는 돈을 그저 받을 수는 없다면서 자기가 차고 있던 시계를 끌러 주었습니다.그 시계는 종민이가 봐 두었던 시계와 똑 같은 것이었습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6:33)

종민이가 만일 그 친구를 외면하고 시계를 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아마도 그 친구는 집에까지 가는데 어려움을 겪었을테고 종민이도 시계는 샀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우리들이 삶에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은 재물이나 명예 따위가 아닙니다.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에 마음을 두고 힘써 행해야 합니다.그 나머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채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길 잃은 친구에게 자신이 모은 돈을 아낌 없이 줄 수있는 종민이의 마음이 그리운 요즘입니다.

예순 아홉번째 이야기
          토끼와 거북이
토끼와 거북이가 산 꼭대기까지 경주를 하기로 했습니다.토끼는 긴 다리로 껑충껑충 뛰어 갔고, 거북이는 엉금엉금 기어갔습니다.토끼는 한참을 가다가 거북이가 보이지도 않게 되자 쉬어 가려고 나무 그늘에 드러누웠습니다.거북이가 쉬지 않고 가다보니 토끼가 저 앞에서 자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거북이는 토끼를 깨웠습니다.깜짝 놀란 토끼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뛰어 갔습니다.거북이도 다시 기어가기 시작했습니다.토끼가 먼저 결승점에 도착했습니다.거북이도 한참 후에 도착했습니다.토끼가 이겼습니다.하지만 아무도 거북이가 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운동 경기를 하는 사람은 규칙대로 하지 않으면 월계관을 얻을 수 없습니다.        (디모데후서 2:6)

이긴 사람은 있는데 진 사람은 없는 경기라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겁니다.하지만 우리는 토끼에게 보다도 거북이에게 더 많은 박수를 치게 됩니다.그것은 거북이가 정당한 승부를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자고 있는 토끼를 깨우지 않고 달렸다면 거북이가 먼저 결승점에 갈 수도 있었을 텐데 거북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그것은 진정한 승부가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살아 가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손을 맞잡고 가야합니다.졸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깨우고, 하나님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가르쳐 주며 가야합니다.하늘나라의 월계관은 그런 사람만이 받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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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번째 이야기
          선을 행할 힘
한 청년이 급히 교회로 가고 있었습니다.그런데 길에서 한 노인이 자전거의 체인이 풀려 끼우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간단한 일이지만 처음 해보는 노인에게는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청년은 자기가 도와 줄까도 생각했지만 오늘은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는 날이고 자기가 오늘 맡은 순서가 생각이 나서 그냥 못본 척하며 지나갔습니다.교회에 도착하니 부흥회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초청된 목사님이 아직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약속된 시간이 한참 지난 후 목사님이 나타났습니다.청년은 깜짝 놀랐습니다.그 목사님은 자전거를 고치고 있던 바로 그 노인이었습니다.
또 선한 일을 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아낌없이 베풀고, 즐겨 나누어 주라고 하십시오.(디모데전서 6:18)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재주가 하나 씩은 있습니다.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만, 친구는 운동을 잘 할 수도 있고, 내가 힘이 세면, 다른 친구는 지혜가 많을 수도 있습니다.그것은 왜 일까요?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서로 돕고 살라고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힘있는 자가 약한 자를, 지혜있는 자가 미련한 자를 서로 서로 도와 가면서 그렇게 말입니다.그 청년이 목사님을 도와 체인을 갈아 주었다면 부흥회가 좀 더 일찍 시작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내게 선을 행할 힘이 있을때 주저하지 말고 행하십시요.우리에게 그러한 힘이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일흔 한번째 이야기
              진달래
아직은 바람이 차가운 이른 봄이지만 산 중턱에는 진달래가 꽃망을을 피우고 있었습니다.한 청년이 산에 갔다가 그 모습을 보고 빨리 꽃을 피우고 싶어서 캐어 집으로 가져왔습니다.진달래를 화분에 심어서 방안 햇볕이 잘드는 창가에 두었습니다.과연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 진달래는 꽃을 피웠습니다.청년은 너무도 기뻤습니다.하지만 산에 진달래가 막 꽃을 피울 무렵 화분에 옮겨심은 진달래는 이미 시들고 있었습니다.추위를 이겨내지 못한 진달래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이러한 여러 가지 환난 가운데서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는 대로, 우리는 이런 환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3:3)

대장간에서 연장을 만들때는 쇠를 불로 달구고 망치질을 하는 것을 여러번 반복합니다.그것은 쇠를 연단시켜 강하게 만들려는 이유입니다.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어릴적부터 많은 고난을 경험하고 힘들게 자라온 사람들은 더 큰 고난이 닥쳐도 절망하지 않고 이겨내지만, 아무런 시련도 없이 자란 사람들은 조그만 일에도 쉽게 좌절하고 맙니다.젊어 고생은 사서도 다는 옛 속담은 그래서 널리 공감을 하는 것이지요.추위를 이겨내는 연습을 해 보지 못한 진달래가 쉽게 시들어 버리는 것은 그만큼 생명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고난 앞에서 강해지세요.크게 쓰임받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일흔 두번째 이야기
                어머니
외할머니께서 편찮으셔서 어머니는 아침 일찍 시골로 내려가셔서 집에는 지혜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아버지도 회사에 가셨기 때문입니다.학교에서 돌아온 지혜는 혼자 있으면서 어머니대신 집안 청소를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먼저 방안을 쓸고 닦았는데, 방 청소를 하면서 방이 그렇게 크다는 것을 처음 느꼈습니다.쓰레기를 버리면서도 쓰레기통이 무거워서 한참 땀을 흘린 후에야 겨우 버릴 수 있었습니다.저녁 식사시간이 되어 혼자 라면을 끓여 먹었지만 맛이 없어서 겨우 한 두 젓가락 먹다가 말았습니다.방안에 혼자 앉아서 TV를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초인종이 울렸습니다.어머니가 오신 것입니다.어머니를 본 순간 지혜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너의 어버이를 즐겁게 하여라. 특히 너를 낳은 어머니를 기쁘게 하여라.(잠언 23:25)

어머니께서 늘 옆에 계셔서 모든 일을 대신해 줄 때는 그 고마움을 잘 모릅니다.하지만 아은이의 경우처럼 어머니의 일을 대신 해 보면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게 됩니다.어머니의 사랑은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는 희생적인 사랑이며, 언제나 변치 않습니다.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도 닮은 것입니다.집에 있을 때는 어머니를 도와 드리세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해서 어머니의 일을 덜어 드리는 것도 어머니를 돕는 일입니다.우리는 아직 어머니의 수고와 희생의 크기를 잘 알지 못합니다. 단지 그 사랑을 느끼고 감사하기 시작할 뿐인 것입니다.

일흔 세번째 이야기
        게으름뱅이의 안식일
한 마을에 게으름뱅이가 살고 있었습니다.하루는 사람들을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그런데 이상한 일은 교회에 나온 사람들이 자신처럼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예배를 드리거나, 성경을 읽는 것이 전부였는데도 아무도 따분해 하거나 짜증을 내는 사람이 없이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었습니다.게으름뱅이는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목사님 저는 매일 매일이 지겹습니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도 즐거운 표정입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목사님은 게으름뱅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당신에게 없는 것은 바로 노동입니다. 안식일이 진정한 안식일이 되려면 나머지 엿새 동안의 노동이 있어야 하는데 당신은 엿새를 그냥 무의미하게 보내기 때문에 안식일이 와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지요.”다음 날부터 게으름뱅이는 연장을 들고 밭에 나가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너희는 엿새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된다. 너희와,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출애굽기 20:9-10)

하나님께서 엿새동안 일하시고 제 칠일에는 쉬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거룩하게 보냅니다.그런데 문제는 ‘엿새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고 하신 말씀은 무시하고 그 다음에 나오는 안식하라는 말만 지키려 하는데 있습니다.안식이 필요한 것은 엿새 동안 힘써 일했기 때문입니다.이 글의 게으름뱅이처럼 늘 게으른 생활을 하다가 안식일이라 해서 또다시 안식을 취한다고 하면 그 안식일이 아무런 의미없는 날이 되고 맙니다.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하지만 엿새동안 열심히 일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일흔 네번째 이야기
          하나님께 맡깁시다.
오랜 옛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갔습니다.“하나님, 저희 인간은 자연 앞에서 너무도 연약합니다. 가뭄이 들어도 걱정이요, 비가 너무 많이 와도 걱정이요, 날씨가 너무 추워도 또 너무 더워도 걱정입니다. 저희들에게 날씨를 다스릴 능력을 주십시오.”하나님은 쾌히 승낙하시고 사람들에게 날씨를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그런데 그 때 부터 사람들 사이에 큰 혼란이 벌어졌습니다.농부들은 농사를 위해 비가 와야 된다고 주장했고, 어부들은 고기잡이를 위해서 비가 오면 안된다고 했습니다.또 아이들은 눈이 내리게 해달라고 떼를 썼습니다.며칠이 지난 후 생활은 오히려 엉망이 되었습니다.사람들은 회의를 갖고 날씨를 다시 하나님께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그 후론 날씨를 원망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곧,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시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게 하시고, 먹을거리를 주셔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사도행전14:17)

가끔은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런 일이 생기게 하시지는 않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그것은 인간의 생각일 뿐입니다.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만 주시려고 하십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당장 이루어 지지 않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을 저버리신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지금 우리 인간에게 날씨를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그것이 우리에게 가져올 엄청난 혼란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나님은 우리에게 늘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늘 기억합시다.

일흔 다섯번째 이야기
          부적과 마스코트
어느 시골 교회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게 되었는데 하늘을 날게 된다는 두려움때문에 점쟁이를 찾아 부적을 사서 품에 품었습니다.비행기 안에 앉은 할아버지는 그래도 마음이 안 놓이는지 자꾸 꺼내서 들여다 보았습니다.에 앉은 선교사가 할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할아버지, 부적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외국인들이 보면 비웃어요.”할아버지는 멋쩍은듯 부적을 휴지통에 버렸습니다.잠시 후 비행기가 기류때문에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그러자 비행기를 타고 있던 많은 외국인들이 주머니에서 마스코트를 꺼내 들었습니다.잠시후 비행기가 아무 일 없이 공항에 도착하자 할아버지가 선교사에게 물었습니다.“마스코트를 붙잡고 안전을 바라는 것도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닌가요”선교사는 무안해서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너희는 우상을 만들거나 조각한 신상을 세우거나 돌기둥을 세워서는 안된다. 또 너희가 사는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것들에게 절해서는 안 된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다.(레위기 26:1)

우상이란 신의 형상을 다른 물질로 대신 만들어 섬기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 속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것도 우상이라 볼 수 있습니다.우리가 흔히 부적을 우상의 대표적인 것으로 보면서도 마스코트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입니다.하지만 마스코트 또한 우상의 일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위험한 일이 닥쳤을때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스코트를 보며 안전을 바라는 것이 바로 그러한 모습인 것입니다.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우리가 부적을 가지고 다니거나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긴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벌하실 것입니다.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십계명중 첫번째 계명입니다.

일흔 여섯번째 이야기
            새장속의 새
으뜸이는 부모님과 동물원에 놀러 갔습니다.우리마다 갖가지 신기한 동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앵무새 우리에 갔을 때는 앵무새가 서툴게 사람들의 말소리를 따라해서 구경온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었습니다.“야, 저 앵무새는 좋겠다.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먹이도 저렇게 많이 주니까.”으뜸이가 엄마를 쳐다보면서 말했습니다.그러자 어머니는 “으뜸아, 그렇지만 자유란 먹을 것이나 보금자리보다도 더 우선적인 것이란다.”라고 말했습니다.으뜸이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어머니는 하늘을 올려다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저 하늘을 나는 참새를 보렴. 먹이도 스스로 구해야 하고, 집도 여기 새장보다 못하지만 저렇게 자유롭게 날 수 있지 않니? 아마 저 앵무새도 자유롭게 날고 싶을 거야. 사람들이 그런 앵무새를 가둬놓은 거지.”으뜸이는 그날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갈라디아서 5:1)

자유란 무엇일까요?그것은 어떠한 것으로부터도 묶이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동물원의 앵무새가 새장에 갇힘으로써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날아 갈 수 없기 때문에 그 새는 자유를 잃은 것이 됩니다.반면에 참새는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지 날아 갈 수가 있습니다.하지만 참새는 자기가 살기 위해 먹이를 스스로 구해야 하고, 추위나 비바람을 피할 집도 구해야 합니다.이처럼 자유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자유롭게 된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은 무엇일까요?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유인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신실히 따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그것이 하나님 안에서 자유롭게 된 우리들이 져야할 책임입니다.

일흔 일곱번째 이야기
          양심에 묻은 오물
선주가 친구의 가방을 뒤져 친구의 시계를 훔쳤는데 시계를 가지고 있으면 들킬 것 같아 방과후에 가져갈 생각으로 학교 뒷 뜰에다가 묻었습니다.교실로 돌아오는데 손에 흙이 묻어 수돗가에가서 손을 씻었습니다.교실에 돌아온 선주는 깜짝 놀랐습니다.선생님이 먼저 들어와서 선주의 행동을 다 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선주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그런 선주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난 널 용서할 수 있단다.그렇지만 선주야, 네 손에 묻은 오물은 물로 씻어 내렸지만, 네 양심에 묻은 오물은 어떻게 씻어내지?”선주는 시계를 다시 친구의 가방에 넣었습니다.양심의 가책을 느낀 선주는 그 후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우리의 자랑거리는 우리의 양심이 또한 증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세상에서 처신할 때에, 특히 여러분을 상대로 처신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순박함과 진실함으로 하되, 세상의 지혜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였다는 사실입니다.(고린도후서 1:12)

바울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곧 자신의 양심을 따르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이처럼 양심이란 선과 악을 분별하고 부끄러움을 알게 합니다.하지만 악한 일을 많이 하게 되면 양심이 굳어져서 결국에는 악한 일을 해도 그것이 악한 일인지도 모르게 됩니다.성경은 오직 선한 양심만이 하나님을 향해 찾아간다고 말합니다.선주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도 계속 남의 물건을 훔쳤다면 악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하지만 선한 양심에 따라 행동을 고쳤기 때문에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우리도 선한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일흔 여덟번째 이야기
                약속
학생들이 다 떠나간 시골 국민학교 운동장 한 구석에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신사 한 명이 서 있었습니다.시후 청년 한 명이 급히 운동장으로 들어와 그 신사에게로 다가갔습니다.신사는 어릴적 친구와 나이 오십이 되면 이 운동장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했는데 오늘이 그 날이어서 친구를 만나러 나온 것이었습니다.“저, 혹시 어릴적 친구를 만나러 오셨나요?” 청년이 물었습니다.“예, 그런데 당신은....”“저의 아버님이 이년 전에 지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전에 어릴적 친구와 약속을 했다면서 오늘이 되면 대신 만나 달라고 저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신사는 친구의 죽음이 슬펐습니다.하지만 약속을 지켜준 친구의 마음이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일상 생활에서 예를 들어서 말하겠습니다. 사람 사이에 한 번 언약을 맺으면, 아무도 그것을 무효로 하거나, 거기에다가 어떤 것을 덧붙일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3:15)

어릴적 맺은 약속이 나이 오십이 되는 날까지 기억되고 또 지켜지는 것이 부럽게 느껴집니다.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고 또 쉽게 약속을 합니다.약속은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을 불신하게 만듭니다.약속을 함부로 하지 마세요.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함부로 하다가는 우정에 금이 갈 수가 있습니다.또한 한 번 맺은 약속은 반드시 지키십시오.그렇게 할 때 만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 부터 신뢰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일흔 아홉번째 이야기
                장미
화단 구석에 장미가 한 송이 피었습니다.런데 얼마나 불평이 많았는지 눈만 뜨면 불평을 털어 놓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장미는 밤이면 춥고 어두워서 못있겠으니 거실로 옮겨 달라고 주인을 졸랐습니다.주인은 장미를 화분에 옮겨서 거실에 두었습니다.얼마 후 장미는 또다시 주인에게 불평을 했습니다.여기는 나비가 찾아오지 않으니 창가에 옮겨 달라고 했습니다.주인은 장미를 창가에 옮겨 주었습니다.하지만 이번에도 장미는 창가에는 고양이가 지나다녀서 싫다며 방안 꽃병에 꽂아 달라고 했습니다.주인은 다시 장미를 화분에서 꽃병에 옮겨 방안에 두었습니다.며칠 뒤 장미는 또다시 주인에게 바깥 화단으로 옮겨 달라고 말했습니다.하지만 이미 뿌리가 잘린 장미는 시들어버렸고 주인은 장미를 뽑아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이 불평한 것과 같이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파멸시키는 이에게 멸망을 당하였습니다.(고린도전서 10:10)

장미처럼 아름다운 꽃이 왜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했을까요?그것은 자신의 위치에서 만족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은 불편하고,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만족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누구의 삶이 더 행복할까요?행복은 누가 더 많은 것을 가졌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누가 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가에 달린 것입니다.불평하지 마세요.어디에건 행복은 숨겨져 있으니까요.

여든번째 이야기
            하나님의 증거
두 사람이 등산을 갔다가 산속에서 큰 비를 만나 길을 잃고 갇혀버렸습니다.한 사람은 겁이 나서 어쩔 줄 몰라했지만 한 사람은 조용히 기도하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습니다.“당신은 이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소?”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눈에 보이지 않는다고해서 바람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을 감고 기도하면 느낄 수가 있죠.”아직도 못 미더워하는 사람에게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당신은 불안에 떨고 있지만 난 지금도 마음이 평안해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있다는 증거지요.”이 말을 마치고 두 사람은 함께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은 것이 아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요한복음 14:27)

하나님을 믿는 자는 언제나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만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음에 근심 걱정이 생긴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를 온전히 맡기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서 다른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본보기가 되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늘 찡그리고 다닌다거나, 화를 자주 낸다면 그 누가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겠습니까?마음의 근심 걱정 다 하나님께 맡기고 웃어보세요.생활이 한층 즐거워 질겁니다.





여든 한번째 이야기
    차라리 네가 바보 천치였다면...,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고 지배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그 당시 유명한 소설가 한 명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워낙 글재주가 뛰어나 사람들은 그 사람이 지은 소설을 읽기를 좋아했습니다.그 당시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일본의 침략을 반대하는 글을 썼기 때문에 일본 경찰의 단속을 받았고 생활도 어려웠으나, 그 소설가는 일본의 침략을 미화하고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글을 썼습니다.세월이 흘러 해방이 되자 그 소설가는 자신의 행동을 친구들에게 변명하기에 바빴습니다.
“내가 그런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어찌 아직까지 살 수 있었겠나? 다 먹고 살려고 한 일이니까 용서하고 다시 친구가 되어주게.”그 말을 들은 그이 옛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만일 자네가 바보 천치였었다면 우린 아직도 친구였을텐데 이젠 너무 늦었네.”그 소설가는 평생을 외톨이로 지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가룟 유다라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묻기를 “내가 예수를 넘겨주면, 내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였다. 그들은 유다에게 은돈 서른 닢을 셈하여 주었다.(마태복음 25:14-15)

어느 시대에나 이런 소인배들이 있는가 봅니다.일제 식민지 시절에 독립군으로 만주에서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해방후에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그 후손들마저 어렵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분통이 터집니다.
그런데 일본에 빌붙어 우리 민족을 팔아먹은 매국노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그때 그때 변신을 하여 아직도 떵떵거리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하지만 가룟 유다는 자신의 죄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최후를 맛보아야 했습니다.일본에 자신의 재능을 바쳤던 그 매국노들이 차라리 바보 천치였더라면 역사에 그토록 치욕적인 이름은 남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똑같은 칼이라도 의사가 사용하면 사람을 살리지만 강도가 사용하면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여든 두번째 이야기
              도시락 가방
학교 앞에서 도시락 가방을 파는 아저씨가 있었습니다.그런데 가방 중에는 겉은 멀쩡해도 가죽이 낡았거나 끈이 잘못 만들어져서 쉽게 망가지는 것들이 있었습니다.아저씨는 그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학생들에게 팔았습니다.하루는 국민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생일이 되어 아저씨는 일찍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아들의 친구들이 와서 생일 잔치를 벌렸는데 아저씨는 깜짝 놀랐습니다.아들의 생일선물로 한 친구가 준 것은 바로 그 아저씨가 팔았던 도시락 가방이었던 것입니다.다음 날 아저씨는 가게에 있는 가방중에서 불량품을 모두 새 것으로 바꾸고 다시는 불량품을 속여 팔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저마다 제 이웃에게 무엇을 팔거나, 또는 이웃에게서 무엇을 살 때에는, 부당하게 이익을 남겨서는 안된다.                      (레위기 25:14)

자기 아들에게 줄 가방이었다면 그 아저씨가 불량품 가방을 팔았을까요?자기에게 이익이 된다고 해서 남을 속이는 일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거짓말을 하면 결국 그 피해는 자신에게 돌아 오게 되어 있습니다.시편에서 거짓말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서지도 못한다고 말했습니다.하나님은 거짓말을 싫어하십니다.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내린 죽음의 벌도 그들의 거짓말 때문이었습니다.모든 일에 정직하세요.거짓말로 자신의 이익을 구하기 보다는 정직함으로 조금 손해보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여든 세번째 이야기
                교육이란
어느날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잡고 스승을 찾아왔습니다.“선생님, 이 아이가 단 것을 너무 좋아해서 큰 일이에요. 선생님이 좀 고쳐주세요.”스승은 아주머니에게 일주일 후에 다시 오라고 말했습니다.어머니는 영문도 모른 채 일주일 후에 다시 찾아왔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지도 않아서 아들은 단 것을 좋아하는 버릇을 고칠 수 있었습니다.“선생님, 이렇게 아들의 버릇을 고칠 수 있으시면서 그때는 왜 일주일 후에 오라고 하셨습니까?” 어머니가 물었습니다.“사실은 저도 단 것을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그런 제가 아이에게 단 것을 먹지 마라고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스승은 일주일 동안 자신부터 단 것을 먹지 않는 훈련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오. 그대는 그것을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4)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합니다.하지만 진리를 배우고도 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것이 되고 맙니다.또한 자신이 행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일은 더더욱 소용없는 것입니다.그런데 우리가 아무 것이나 닥치는 대로 배우는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악한 일에 능숙하게 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배우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것이 되고 맙니다.우리가 참으로 배워야 할 것은 성경입니다.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또 실천하세요.우리의 실천으로 인해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여든 네번째 이야기
                  경험
두 청년이 누가 먼저 산 정상에 오르는가 하는 내기를 했습니다.한 청년은 등산로를 따라 열심히 산을 올라갔지만 다른 청년이 먼저 산꼭대기에 올라와 있었습니다.그 청년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왔던 것이었습니다.이번에는 누가 빨리 산에서 내려오는가 하는 내기를 했습니다.먼저 올라왔던 청년이 또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려고 했지만 케이블카가 고장이 나서 운행되지 않고 있었습니다.걸어서 올라갔던 청년은 한번 지나갔던 길이었기 때문에 쉽게 내려 올 수 있었지만 다른 청년은 처음 가보는 길이라 내려오는 동안 미끄러지기도 하고 길을 잃어 한참을 헤맨 뒤에야 겨우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모든 수고에는 이득이 있는 법이지만, 말이 많으면 가난해질 뿐이다.(잠언 14:23)

사람들은 모든 일이 쉽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수고하지 않고도 큰 일이 성취되기를 바라고, 일하지 않고도 돈을 벌 방법을 생각합니다.하지만 자신이 수고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설령 그 일을 이루었다고 할 지라도 그것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산 꼭대기에 올라오기는 했지만 그것이 진정 등산을 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은 그 산을 오르는데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았고, 그 산에 대해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너무 편한 일만 하려고 하지 마세요.모든 수고에는 그만한 이득이 있는 겁니다.

여든 다섯번째 이야기
            병아리
한 꼬마가 닭장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장 안에서는 암탉이 병아리를 까기 위해서 알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꼬마는 초조해졌습니다.언제쯤이면 병아리가 나올까, 그것만 기다리고 있던 어느날, 꼬마는 암탉이 품고 있던 알을 빼앗았습니다.그리곤 알을 깨뜨려 버렸습니다.알에서 병아리가 나올 줄 알았던 꼬마는 깜짝 놀랐습니다.계란안에서는 채 모습을 갖추지 못한 병아리가 죽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야고보서 1:4)

우리 민족은 원래 여유있고 매사에 인내할 줄 아는 민족이었습니다.인내라는 것은 참는다는 것입니다.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모두들 조급병에 걸려서 식당에 가도 ‘빨리 빨리’를 외치고 차를 타서도 ‘빨리 빨리’를 외칩니다.조금만 줄이 길어도 새치기를 하는 이같은 조급병은 본래 우리 민족의 성품이 아니었습니다.참고 인내함으로 우리는 우리의 본성을 되찾아야겠습니다.옛말에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쓸 데 없는 조급함으로 인해 불쌍한 병아리를 죽이는 바보스러운 일을 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여든 여섯번째 이야기
        예수님이 보고 계시잖아요
사랑이가 맹장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하지만 사랑이는 아무리 아파도 수술은 겁이 나서 못하겠다고 떼를 썼습니다.
수술을 받지 않겠다는 사랑이를 억지로 병원에 데려가서 수술을 받게 한 아버지는 걱정이 되었습니다.수술이 다 끝나고 아버지가 사랑이에게 물었습니다.“그래 수술을 받는 동안 무섭지 않았니?”사랑이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아뇨. 하나도 안 무서웠어요.”“수술하는게 겁이 난다던 네가 안 무서웠단 말이니?” 아버지가 다시 물었습니다.“예, 처음에는 무서웠거든요. 하지만 수술실에 예수님 그림이 걸려 있잖아요. 예수님을 믿는 의사 선생님들이 수술을 하고 있고 또 예수님이 보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하나도 안 무서웠어요.”사랑이의 대답에 아버지는 예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요한복음 14:1)

사랑이가 수술을 받으면서도 두렵지 않았던 것은 마음의 근심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을 믿음이 적은 사람이라고 나무라셨습니다.부모가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을 입히고 좋은 것을 먹이려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아시고 그것을 채워주십니다.또한 사랑이가 안심하고 수술을 받게 된 다른 이유는 수술을 할 의사 선생님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로 부터도 이러한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행동을 바르게 해야 될 것입니다.

여든 일곱번째 이야기
                펠리컨
어느 산골에 새들만 모여 사는 동네가 있었습니다.그 마을 새들은 먹이를 잡으면 마을 한 가운데에서 똑같이 나누어 먹고 살았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펠리컨이 사냥을 갔다가 아주 큰 숭어를 한마리 잡았습니다.펠리컨은 먹이를 물고 마을로 돌아오다가 갑자기 욕심이 생겼습니다.“이 숭어 만큼은 아무도 주지 말고 나 혼자 먹어야지. 그런데 어디에다 이 숭어를 감추지?” 펠리컨은 혼자 골똘히 생각하다가 결국 자신의 입 속에다 감추기로 했습니다.마을로 돌아온 펠리컨은 혼자서 숭어를 맛있게 먹었지만 입속에 남겨둔 숭어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그래서 친구들이 말을 걸어도 아무 대답도 못하고 피하기만 했습니다.그 후로도 펠리컨은 먹을 것만 생기면 입속에다가 감추는 바람에 친구도 없고 또한 턱도 길게 늘어나 버렸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당하는 것은 각각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서, 꾐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야고보서 1:14-15)

사람들이 다 함께 못살고 어려울 때는 오히려 서로 나누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데, 어느 정도 생계가 해결되고 평안을 누리게 되면 이웃도 모르고 살아갑니다.특히 돈이나 재물 따위 앞에서는 더더욱 욕심이 커져서 그것으로 인해 싸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죄는 욕심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욕심을 버리고 이웃과 나누기를 즐겨하세요.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들은 이상하게도 나누면 나눌수록 더더욱 풍성해지고 우리의 마음까지 기쁘게 합니다.사랑도 그렇고, 봉사도 그렇고....,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친구마저 잃고 외톨이 펠리컨 신세가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여든 여덟번째 이야기
            회사의 주인
그날은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는 날이었습니다.취직을 하기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회사로 몰려 들었습니다.그런데 회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어제 내린 비가 내려가지 않고 고여 있어서 회사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돌아서 들어가야 하는 불편을 겪었습니다.그러던 중 한 젊은이가 수위실에서 빗자루를 가져다가 그 고인 물을 쓸어 내기 시작했습니다.얼마 지나지않아 회사앞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깨끗해졌습니다.그 사실을 안 사장님은 그 청년을 제일 먼저 사원으로 뽑았습니다.
가장 적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충실하고, 가장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누가복음 16:10)

자신이 다닐 회사 앞에 물이 고여 있는데, 지금은 사원이 아니니까 그냥 가지만 다음에 정식사원이 되면 깨끗이 치울것이라고 말해봤자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일을 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평소에는 대충 대충 일을 처리하던 사람에게 중요한 일이라고 해서 신중을 기울일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평소의 습관이라는 것이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작은 일
에도 충실하고 열심히 맡은 바 책임을 다한다면 다음에 큰 일이 닥쳐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든 아홉번째 이야기
          종이가 쓰이는 곳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습니다.어느 날 아버지는 형에게 재산의 반을 나누어 주면서 그것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동생이 그 사실을 알고 화가 나서 아버지에게 따지고 들었습니다.아버지는 그런 동생에게 하얀 종이를 두장 주면서 한장은 대장간에 또 한장은 미술가에게 갖다 주라고 말했습니다.동생은 아버지가 시키는 데로 했습니다.“그래 대장간에 갖다 주니 그것으로 뭘 하드냐?”“종이를 화로에 넣어 불을 땠습니다.”아버지는 또 다시 물었습니다.“미술가에게 갖다주니 그것으로 뭘 하드냐?”“미술가는 그 종이에 그림을 그렸습니다.”“똑같은 종이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화로에 던져지기도 하고 그림을 담는 귀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네가 재산을 가지고 참으로 귀하게 쓸수 있을 때가 되면 나머지 재산을 네게 주겠다.”그 후로 몇년이 지난 후 동생도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가진 사람에게는 더주어서 넘치게 하고, 없는 사람에게서는 있는 것마저 빼앗을 것이다. (25:28-29)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돼지에게는 아무리 귀한 진주 목걸이를 줘도 그것의 귀중함도 모르고 어떻게 써야 할 지를 몰라서 결국은 진주를 못쓰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사람도 마찬가지로 그 사람에게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그것을 제대로 쓸 줄 모르면 주지 않은 것만 못합니다.재능도 마찬가지입니다.사람에게는 저마다 주어진 재능이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몰라서 썩힌다면 그 재능마저 하나님께서 다시 가져가실 것입니다.우리는 우선 하나님이 주실 크고 귀한 능력을 잘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겠습니다.열심히 공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음으로 인해 그 뜻을 깨닫는 것이 바로 능력을 키우는 일입니다.

아흔번째 이야기
              카나리아
카나리아는 매우 아름다운 노래 소리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어느 날 마을의 부자가 그 카나리아를 사서 집으로 가져갔습니다.카나리아는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고 부자도 그 카나리아를 동네 사람들에게 칭찬하기에 바빴습니다.카나리아는 우쭐해졌습니다.그래서 밤이 되어도 노래소리를 그칠 줄 몰랐습니다.카나리아의 노래소리를 칭찬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시끄럽다고 항의를 할 정도였습니다.결국 그 부자는 그 카나리아를 헐값에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더이상 그 카나리아를 사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의 손아래에서 스스로 겸손하십시오. 때가 되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6)
칭찬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듭니다.아무 것도 아닌 일도 잘한다고 칭찬을 하면 괜히 한번 더 해보이고 싶은 것이 사람의 솔직한 심정입니다.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겸손해지십시요.진정 뛰어난 일이라면 스스로 떠벌리지 않아도 다들 알게 됩니다.우리를 높이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우리가 가진 재능이라고 해도 그것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신데 그런 하나님앞에서 잘난 체하는 것은 꼴불견입니다.칭찬을 들을 때 특히 조심하십시요.교만해져서 우쭐거릴 때 가장 넘어지기 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잘했다 칭찬을 받는 것이 가장 귀한 것임을 알아야합니다.





아흔 한번째 이야기
            더 위험한 것
꼬마가 놀이터에서 새총을 가지고 놀았습니다.그러다가 돌맹이가 잘못하여 지나가던 아주머니의 팔등을 맞추고 말았습니다.아주머니는 꼬마를 데리고 그 꼬마의 어머니를 만나러 갔습니다.“애가 어떻게나 별나고 말썽꾸러기인지 말도 못해요. 지금이 이런데 크면 더 큰 말썽을 부릴게 뻔하다구요. 그리고 항상 위험한 것만 가지고 노니까 엄마가 좀 야단을 치세요.”아주머니는 말을 그칠줄 몰랐습니다.가만히 듣고 있던 꼬마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우리 애가 위험한 것을 가지고 논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아주머니는 더 위험한 것을 가지고 계시네요.”“그게 뭐죠?” 아주머니가 물었습니다.
“바로 입이에요. 돌맹이는 몸을 다치게 할 뿐이지만 말은 사람의 마음까지 다치게 하거든요.”
우리는 모두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을 하면서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온 몸을 제어할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야고보서 3:2)

예수님은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우리를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가 쉽게 내뱉는 말들이 혹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지 생각을 해봅시다.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쉽게 치료할 수가 있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치료가 어렵습니다.남을 무시하는 말, 약점을 캐내어 상처를 주는 말들보다는 사랑의 말 한마디가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더 잘어울린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말 한마디를 위해 세 번의 침묵을 하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오랜 생각을 거쳐 나온 말 한 마디가 그만한 힘을 갖는 법입니다.

아흔 두번째 이야기
          성경이라는 틀
정식이가 학교에서 만화책을 보다가 선생님께 걸려서 벌청소를 하게 되었습니다.청소가 끝나자 선생님은 정식이를 불렀습니다.“정식아, 너희들의 마음은 아직 굳지 않은 쇳물과도 같은 거란다. 그 쇳물을 담는 형틀이 둥글면 둥근 모습이 되고 네모난 것이라면 네모가 된단다. 만화를 보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냐. 하지만 요즘 너희들이 즐겨보는 만화는 대부분 악하고 비도덕적인 것들이 많지. 너희들의 마음을 그런 틀에 담아서야 되겠니?”선생님은 성경을 한 권 꺼내시면서 이 말을 덧붙이셨습니다.“너의 마음을 이 성경이라는 틀에 담아보면 어떻겠니?”성경을 받아든 정식이는 속으로 꼭 이 성경의 모습대로 살아가겠다고 선생님께 약속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디모데후서 3:16)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원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또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를 모른다면 우린 다 헛것입니다.하나님은 분명히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고 계시며 그 말씀은 아직도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이천년도 더 전에 기록된 말씀이 지금도 아무런 저항없이 우리의 일상에 적용되는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성경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우리의 삶을 부어 넣어 맡길만한 틀은 오로지 성경밖에 없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흔 세번째 이야기
          호수의 그림자
농부가 열심히 농사를 지어 가을에 추수한 곡식이 창고를 채우고도 마당까지 가득 찼습니다.그런데 하룻밤이 지나면 마당에 쌓아 놓은 곡식이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알고 보니 이웃 마을의 논에 병충해가 돌아 추수한 것이 적어서 이웃 마을 사람들이 밤에 몰래 훔쳐가는 것이었습니다.“밤에 도둑이 곡식을 못 훔쳐가게 대문을 잠그고 지키는 것이 어떨까요?”
부인이 걱정이 되어 농부에게 물었습니다.“낮에는 호수에 산과 구름과 하늘이 그림자로 드리워지지만 밤에 그것들이 다 사라진다고 해서 호수는 아까워하거나 가둬두지를 않지요. 이웃 마을 사람들이 곡식을 몰래 가져가기 전에 우리가 그들을 찾아가서 그들이 필요한 만큼의 곡식을 전해 주는 것이 도리입니다.”농부의 말에 부인도 동의 하는듯 웃음을 지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주께 꾸어드리는 것이니, 주께서 그 선행을 넉넉하게 갚아 주신다.                (잠언 19:17)

자기 소유에 대한 욕심만큼 사람을 추하게 만드는 것도 드뭅니다.집안에 귀금속이나 돈을 잔뜩 모아두고 행여나 누가 훔쳐 갈까봐 한 시도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들이 과연 행복할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요, 거둬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우리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남의 물건을 훔쳐가는 사람을 도둑이라 하지만 많이 가진 사람이 배고픈 사람을 보고도 못본 척 한다면 그 사람 역시 악한 사람입니다.가진 것을 나보다 더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세요.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아흔 네번째 이야기
            남들이 하니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서 한 사람이 하늘을 보고 있었습니다.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늘에 뭐가 있는가 싶어서 같이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한 명, 두 명씩 사람들이 모여 들어서 사람들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하지만 하늘에는 아무것도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하늘에는 아무것도 없잖아.”“에이 시간만 버렸네.”
또 다시 한, 두사람씩 제 갈길을 가기 시작했습니다.맨 처음 하늘을 쳐다보던 사람은 이미 그 자리에 남아 있지도 않았습니다.
이들아, 너는 내 지혜에 주의를 기울이고 내 명철에 너의 귀를 기울여서, 분별력을 간직하고, 네 입술로 지식을 굳게 지켜라.(잠언 5:1-2)

하늘에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그런데도 한 사람의 장난에 다들 생각없이 따라한 것입니다.뚜렷한 주관이 없는 사람들은 주로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다른 사람들이 다 하는데 자신만 하지 않으면 괜히 불안해집니다.주관은 자신감에서 나옵니다.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아무리 “신은 죽었다” 라고 외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하나님의 말씀에 늘 귀기울이고 참과 거짓에 대한 분별력을 키우세요.세상이 악해질수록 헛된 소문이 난무하고 그것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하나님의 말씀으로 굳게 무장하지 않으면 신앙을 지키기 힘든 세상입니다.

아흔 다섯번째 이야기
      달을 보면 뭐가 생각납니까?
임금님이 어느 날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서 선비의 옷을 입고 각 마을을 돌아 다녔습니다.날이 어두워 마을의 어떤 집에서 묶어가게 되었습니다.그 집 주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임금님이 이렇게 물었습니다.“저기 둥근 달을 보면 뭐가 생각나시오.”“달을 좋아했다는 시인 이태백의 시가 생각납니다.”임금님은 다음날 또 다른 마을에서 만난 농부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그러자 농부는 “아이들에게 저 달처럼 크고 흰 떡을 먹일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나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임금은 곧 궁궐로 들어가서 첫번째 마을의 관리에게는 상을 내렸지만 두번째 마을의 관리는 관직을 박탈하고 엄한 벌을 내렸습니다.그 마을의 관리가 백성을 착취하고 못살게 군다는 사실을 이미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그들에게서 곡물세를 착취하니, 너희가 다듬은 돌로 집을 지어도 거기에서 살지 못한다. 너희가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어도 그 포도주를 마시지는 못한다.(아모스 5:11)

임금님이 신하에게 명해서 자세히 알아본 두 마을의 실정은 이랬습니다.달을 보고 시인 이태백을 생각한 사람의 마을은 살기 좋은 마을이었습니다.도둑도 없고 먹을 것이 풍족하고 이웃 간에 정이 넘쳐 흘렀습니다.하지만 달을 보면서 배곪고 있을 아이들에게 떡 한덩이 먹일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을은 아주 생활이 어려웠었습니다.마을을 다스리는 자는 백성을 착취해서 자신의 창고를 채웠고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로 감옥이 넘쳐났습니다.백성들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지도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아흔 여섯번째 이야기
        단 두명뿐이라네
평생을 바다에서 인명구조원으로 일하던 사람이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축하를 하러 찾아온 친구가 이렇게 물었습니다.“인명구조원을 하면서 이때까지 자네가 목숨을 구한 사람은 몇명이나 되지?”“단 두 명 뿐이라네.”친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물었습니다.“삼 십 년을 넘게 일한 자네가 단 두 명 밖에 못 구했다구? 농담하지 말게나.”인명구조원은 친구에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물론 구해낸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았지. 하지만 그 후 다시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날 찾아온 사람은 단 두 사람 뿐이었네. 난 그 두 사람만이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되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사람 한 명밖에 없느냐?” (누가복음 17:17)

예수님께서 문둥병자들 열명을 깨끗하게 고쳐주셨는데 그 중 예수님께 다시 나아온 사람은 단 한사람, 그것도 유대인들이 무시하던 이방사람 뿐이었습니다.나머지 아홉 명은 은혜를 입고도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인명구조원이 두 사람 밖에 구하지 못했다는 것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람으로서 제구실을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지금의 우리들은 안 그런지 반성해 봐야합니다.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면서까지 우리들을 죄와 사망에서 건져 주셨는데 그 크신 은혜를 잊고 지내지는 않았습니까?진정으로 감사함을 느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적이 있었습니까?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흔 일곱번째 이야기
              이 정도야
어촌 마을에서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나가기 위해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그러던 중 한 청년이 그물 한쪽에 그물코가 한줄 나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이 정도야 고기를 잡는데 어떨려구.”청년은 혼자말로 중얼거리면서 일을 끝냈습니다.
그물을 배에 싣던 아저씨도 그물코가 나간것을 발견했지만 “이 정도야”라며 무시하고 그물을 실었습니다.그물을 바다에 던지려던 아저씨도 그물코가 나간 것을 봤지만 “이 정도야”라며 바다에 던졌습니다..결국 바다속에 던져진 그물은 빠른 물살에 다 풀어지고 고기는 한마리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든지 이 계명 가운데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폐지하고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마태복음 5:19)

강을 막고 있는 큰 댐도 작은 개미 구멍하나로 인해 무너지는 수가 있습니다.생활하는 가운데 이 정도는 봐주시겠지 하면서 어기는 하나님의 명령 하나 하나가 우리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듭니다.그물코가 끊어진 것을 본 사람 한명이라도 그것을 지적하고 고쳤으면 어부들은 많은 고기를 잡고 돌아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하지만 아무도 그 작은 것이 그토록 큰 일을 낼 줄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작은 일에 충실하세요.큰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아흔 여덟번째 이야기
            하나님께서 주신 것
전쟁터에서 팔 하나를 잃어버리고 병원에 누워 있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간호하기 위해 왔습니다.어머니는 누워있는 아들에게 성경을 읽어주려고 했습니다.아들은 어머니가 들고 있는 성경을 빼앗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다 필요없어요. 하나님이 있다면 내 팔이 이렇게 잘려지도록 내버려 둘 리가 있겠어요?”어머니는 아들의 오른손을 잡으며 “네게는 아직도 오른손이 남아 있지 않니? 하나님은 네 왼팔을 가져가신 것이 아니라 오른 팔을 남겨주신 것이란다. 이 엄마는 그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단다.”그 후로 아들은 한 쪽 팔만 가지고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학자가 되었습니다.
어리석은 백성아, 이 미련한 민족아, 너희는 어찌하여 주께 이처럼 갚느냐? 그는 너희를 지으신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희를 만드시고 일으키신 분이 아니시냐?  (신명기 32:6)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백성입니다.아무것도 아닌 흙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셔서 생명을 불어넣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불평을 합니다.‘왜 나는 키가 작을까?’‘왜 나는 뚱뚱할까?’그러다가 다쳐서 팔이라도 하나 잃는 날이면 하나님을 저주하기도 합니다.하나님은 우리에게서 팔을 하나 가져 가신 것이 아니라 그 외의 나머지 몸뚱이를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토기장이가 만든 질그릇이 왜 나는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항의할 수 없다는 비유의 말씀대로 우리는 우리의 지금 모습에 불평해서는 안됩니다.생명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살아야 되겠습니다.

아흔 아홉번째 이야기
              무릎의 상처
아버지는 유명한 도공이었습니다.아들은 학교를 졸업하고나서 도공이 되기 위해 아버지께 도자기 만드는 기술을 배웠습니다.하지만 아들이 만든 도자기는 모양도 볼품 없고 쉽게 깨져버렸습니다.얼마 후 아들은 아버지에게 더이상 도자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난 네가 처음 걸음마를 시작할 때 너무도 기뻤단다. 하지만 그 후로도 넌 수도 없이 넘어져서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지. 하지만 그 덕분에 넌 잘 걸을 수 있게 되었어. 네가 정말 훌륭한 도공이 되고 싶다면 수 천 번도 더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도자기를 만들어야만 돼.”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더했습니다.“아버지는 너의 걸음마 연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을거야.”아들은 다시 흙을 빚기 시작했습니다.
보아라, 내가 너를 단련시켰으나, 은처럼 정련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의 풀무질로 달구어 너를 시험하였다. (이사야 48:10)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도 없이 넘어집니다.그러다가 넘어지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될 때쯤 우리는 자전거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와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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