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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3-18 12:49
[기타] *주님의 고난은 나의 허물로 인함이라*(사 53:1-10)
 글쓴이 : 한나
조회 : 4,186  
*주님의 고난은 나의 허물로 인함이라*(사 53:1-1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순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이 당하신 고난을 가슴 속
깊이 묵상하면서 이 한 시간도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고난과 고통을 당하심은 바로 우리를 위해서, 바로 나를 위
해서 대신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나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나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 때문에 십자가를 지신 것도 아
닙니다. 너 때문도 아닙니다. 그 누구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의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
라. 죽어 마땅한 나의 죄악 때문에, 나의 허물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다는 이 엄숙한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가 구
원의 문으로 들어가는 비밀을 가지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으며, 영원한 죽음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 당해야할 저주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
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십자가는 흉악한 죄인들에게 주어지는 최
고의 사형 틀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방법입
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모든 교인들은 이 기간을 통해서 경건과 절제, 금식과 회개, 자선과 구제
를 통해 추상적인 이웃사랑이 현실적인 시혜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는 사순절기간을 맞이해서 예수의 일 거수 일 투족을 본받아야 하고
주가 가신 가시밭길을 말없이 따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우리도 우리의 이웃을 용서해야
합니다.

18세기 독일에 슈텐베르그라는 유명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당시 유명한
화가라면 성화를 주로 그리는 시대였습니다.
이 분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가,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거리로 나갔습니다. 우연히 천진난만한 집시 소녀를
만났습니다. 그 예쁜 모습을 화폭에 담고 싶어 화실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 아이는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모델로 앉아있는 위치에서 아직 미완성
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그림이 정면으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는 신기해서 묻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나무에 매달려 있나요?
아마 저 사람은 나쁜 죄를 많이 지었나보죠?”
깜짝 놀라며 슈텐베르그가 말합니다.
“아니야, 저 분은 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분이란다. 온 인류의 죄를 대
신해서 그렇게 십자가를 진 것이야.”
아이가 또 말합니다.
“참 불쌍하군요. 그러면 저 사람이 누구 때문에 그렇게 십자가를 지게 되
었나요? 아저씨 때문에 저 분이 죽었어요?”

이 말이 그만 마음속에 큰 찔림이 되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내 죄 때문에, 바로 나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다는 생각을 깊
이 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때부터 집시 소녀의 질문이 그의 마음속에서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예수님이 나 때문에, 나 한사람의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는가?
그리고 이 문제를 안고 깊은 씨름을 했습니다. 이 질문에 분명하고도 확실
한 대답을 얻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정성껏 예
배드렸습니다. 그러던 중에 성령께서 역사하셨습니다. 놀라운 성령 체험
을 했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내 죄 때문에, 바로 나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나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
함은 나의 죄악을 인함이라. 이 깨달음이 있자, 감당 못할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뜨거운 구원의 감격이 물밀듯 밀려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이 신앙과 감격 속에 드디어 이 작품은 완성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영적
감동을 준 명작이 되었습니다.
자, 과연 예수님은 왜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왜 그랬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 누구도 아닌 나 때문입니다.
나의 죄와 허물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
히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과거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남의 것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막연하게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
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바로 죽어 마땅한 나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어떤 고난을 내 몸에 채워야 할까요?

1.희롱 당하신 고난을 내 몸에 채워야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 후 목요일 저녁 제자들과 함께 성찬
을 드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피와 땀을 흘려 기도 하신 후 사랑
하던 제자 가룟 유다의 배신에 의해 체포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대제자장 안나스와 가야바의 뜰에서 온갖 곤욕과 모욕을 당하셨습니
다. 우선 홍포를 입히셨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군인들이나, 행정관, 또
는 왕들이 입었던 망토와 같은 옷인데 주님을 놀리기 위해서 그 당시
황제들이 입는 자색 옷을 흉내 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홍포는 낡은 천
으로 만들어서 금방 찢어질 것 같은 얇은 천이었는데 이 모두는 예수
님을 조롱하기 위한 짓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머리에는 왕관 대신 가시로 만든 관을 씌워서 사람들
에게 보임으로 부끄러움을 사게 했습니다.
그리고 갈대로 쳤습니다. 갈대는 그 당시 그곳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천하고 약한 풀이었습니다. 이토록 심한 조홍을 당하시고 난 후 빌라도
에게 사형선고를 받으셨습니다.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로마 군인들에게
채찍을 맞으시고 흉악한 두 강도와 함께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
리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조롱하고 멸시하고 침 뱉던 빌라도 뜰에
서 우리 주님은 인류를 죄악 속에서 구원하기 위한 장렬한 역사를 이루
시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예수님이 대신 지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어도 상관이 없다. 하나님은 사랑이시
니 모든 것을 다 용서해 주시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
님이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반드시 죄를 벌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공의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도덕적 질서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 죄를 벌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벌하시
면 우리는 다 멸망할 수밖에 없는 고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벌하시지 아니하시고 대신 누구를 벌하셨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가 져야 할 죄 값의 십자가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지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순절 기간만이라도 잃었던 예수를 다
시 만나고 소홀했던 사명을 다시 잡아 헌신함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사
랑의 사도, 복음의 나팔, 헌신의 일꾼, 구제의 천사들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2.십자가의 고난을 내 몸에 채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고난 받는 종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습니다.
일찍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심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왜 예수님은 고난과 고통을 선택하셨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고통과 고난의 일생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깊은 산 속 시골
여성의 몸에서 태어나 가난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힘든 노동을 하며 성
장했습니다. 실망도 하고 울기도 하고 배신도 겪었습니다. 버림받기도
하고 심한 상처도 입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인, 십자
가의 처형을 당할 때까지 예수님의 일생은 고통과 고난의 생애였습니
다.
그러나 예수님이 고난과 고통을 받은 것은 운이 나빠서가 아니었습니
다. 선택을 잘못할 결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잘못된 언행에 대한 대가
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고통과 고난은 병 때문도 아니요, 사고와
같은 우발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과 고통은 얼
마든지 피할 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선택이었
습니다. 자발적인 고난의 길을 걸어 가신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
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
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 오신 주님은 우리의
허물을 위해, 우리의 죄악을 위해 조롱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을 쓰셨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로마
군병의 채찍에 쓰러지고 넘어지며 걸어야 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채 여섯 시간을 고통당하며 피와 물을 다 쏟았습니다. 왜 주님께서 그
렇게 해야만 했습니까? 우리인간은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머리로 죄를
짓고, 두 손과 두발로 많은 범죄를 했습니다. 이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우리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친히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또 예수님이 죄악을 짊어지셨다고 말했는데 이 죄악
은 원죄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혀
진 죄악의 담을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모두 허물어뜨리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을 당하심으로 인류의 죄가
청산되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긍휼과 사랑의 은총을 누릴 수 있게 되었
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캅은 86세의 나이에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를 죽이려던 총독이 폴리캅에게 “예수를 모독하면 살려주겠다.”고 했
을 때 폴리캅은 “주님은 86년 동안 나를 한 번도 버리지 않으셨는데 내
가 어찌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모독하겠습니까?”라고
했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를 당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입니다. 우리나라도 일제시대와 공산주의
자들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들이 순교의 피를 흘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신들을 위해 피를 흘
리신 주님의 사랑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첫째, 주님의 사랑은 나를 변화시킵니다.
둘째, 주님의 사랑은 우리 가족을 변화시킵니다.
셋째, 주님의 사랑은 이웃을 한 민족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자신의 몸을 버리신 주님
을 알리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바로 주님의 사랑을 몸소 체험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순절의 참된 의미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
다. 나를 위해 자신을 버리신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우리도 그 사랑을 실천하는 신실한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채찍에 맞은 고난을 내 몸에 채워야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하시던 그 당시 로마에서는 사형수들에게 사
형 집행을 하기 전에 채찍으로 때려고 고통을 가했습니다. 이 채찍은 끔
찍하고 대단히 고통스러운 형벌입니다. 어떤 사형수는 십자가의 형벌을
받기 전에 이 채찍을 맞다가 죽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때 사용한 채찍은 손잡이가 짤막한 채찍인데 그 끝에는 여려 줄의 가
죽 줄이 있고 그 가죽 줄 끝에는 날카롭고 예리한 쇠붙이나 아주 단단한
짐승의 뼈를 쪼개서 붙인 채찍입니다. 이 채찍으로 사람을 때리면 채찍
이 사람의 몸에 착착 감겼다가 끌어당기면 살점이 찢어지는 고통을 주는
채찍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런 채찍을 몸소 다 맞으셨습니다.
그리고 탈진한 상태에서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통해
첫째, 소망스런 하늘나라 복음은 물론
둘째, 고통스러운 병자를 고치며
셋째, 지탄받는 죄인을 용서하시어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는 일을
하셨습니다.
넷째, 그리고 주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치료와 용서와 축복과 은총을 베
푸셔서 시험 든 사람의 영혼과 낙심하는 자의 마음과 병든 사람의 육체
와 실패한 자들의 재기와 성공을 위해 기적을 베풀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하늘나라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해 물
과 피를 쏟으시고 하나밖에 없는 당신의 생명을 십자가 위에 못 박았습
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우연히 선택받은 존재가 아니고 예수의 희생을
통해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선택받은 천하보다 귀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구원 얻은 존재이기 때문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나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나를 치료하시기 위해
채찍에 맞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에게 용서와 구원을 베
풀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느 산골에 그만 산불이 났습니다. 무서운 기세로 타들어오는 불길이
화전민이 사는 마을까지 덮치게 되었습니다. 멀리 불길에 포위되어 당황
한 사람에게 마을의 어른이 말합니다.
꾸물대지 말고 살고 싶거든 이 마을에 불을 질러라. 운동장 크기만 하게
불을 질러라. 드디어 불에 탄 자리가 운동장 크기만 하게 되었습니다.
한번 불 탄 자리는 다시 불에 타지 않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그
불탄 자리에 올라서서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살아 남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정죄함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다시 정죄함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우리 모든
죄의 값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 값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현재 짓는 죄 값을 다 지
불하셨습니다. 심지어는 미래에 지을 죄 값까지도 모두 다 십자가에서 지
불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정죄함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절에서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왜 그렇
습니까?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그 정죄함을 대신 받
으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왜 친히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바로 나 때문입니다.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사순절 귀한 기간은 우리가 골고다 언덕 주님의 십자가 밑으로 나아가는
계절입니다. 우리는 심령의 눈을 들어 십자가의 모진 고난을 당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가시에 찔린 그 이마에서 점점이 피가
흘러 이마를 적시고 눈을 감기며 볼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두 손은 모두
못이 박혔습니다. 대못이 그만 예수님의 부드러운 살을 찢고 뼈를 으깨어
드디어 나무에 깊이 박혔습니다. 몸이 점점 처질수록 피가 더욱 많이 흐
릅니다.

두 발 역시 큰 대못으로 꿰뚤렸습니다. 못 자국 위로 붉은 선혈이 줄줄이
흐릅니다. 그리고 그 옆구리를 무지한 군인이 날카로운 창으로 찔렀습니
다. 뜨거운 선혈이 물과 함께 쏟아집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
갑니다.
이 고통은 한 시간, 두 시간,고 통의 시간이 흘러 여섯 시간이나 십자가
에서 생명이 소진해 한 방울 물과 한 방울 피를 다 흘리기까지 계속되었
습니다. 자연도 이 광경을 이기지 못해 지진으로 소리 질렀고, 하늘도 차
마 이 광경을 보지 못해서 깊은 어둠이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이런 고통을 당하셔야만
했습니까? 바로 나 때문에, 나를 대신하여, 나를 위하여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
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사순절 귀한 계절에 십자가의 고난과 구원의 깊은
은총을 묵상하며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박종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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