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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2-29 14:03
[기타] 문제에는 해답이 있다
 글쓴이 : 한나
조회 : 5,393  
제목 : 문제에는 해답이 있다
본문 : 사무엘하 21:1-6

1.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2.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그들은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그들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물으니라
3, 다윗이 그들에게 묻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하니
4, 기브온 사람이 그에게 대답하되 사울과 그의 집과 우리 사이의 문제는 은금에 있지 아니하오며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는 문제도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하니라 왕이 이르되 너희가 말하는 대로 시행하리라
5, 그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영토 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6. 자손 일곱 사람을 우리에게 내주소서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목매어 달겠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내가 내주리라 하니라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문제는 우리의 삶 속에 계속 찾아옵니다. 문제가 없는 때는 한 순간도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어려움이 찾아오면,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있던 길이 없어져버립니다. 평소에 가던 대로 가면 될 줄 알았는데, 어려움이 찾아오면 길이 없어져버립니다. 그래서 어디로 갈지 모르게 됩니다.
길이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당황합니다. 그러나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길을 모를 뿐입니다. 길은 있습니다. 다만 길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문제가 있으면, 답이 있습니다. 문제는 답을 위해 존재합니다. 어디에든 문제가 있지만, 어디에든 답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본적으로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지만, 이것은 우리의 기본 전제입니다. 문제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답이 있습니다. 다만 답을 모를 뿐입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답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삶은 문제를 풀어가는 여정입니다. 문제는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그 문제를 풀어가는 여정이 인생입니다. 문제는 끊임없이 닥쳐오고, 우리는 그것을 풀어가며 살아가야 합니다.
어려운 문제가 오면, 힘들지만, 문제를 해결한 이후에 찾아오는 축복도 그만큼 큽니다.

어려운 문제가 오면, 많은 사람들은 문제의 파도에 파묻혀버립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인생을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운명론에 빠져서 자학(自虐)하며 살아갑니다. 혹독한 시련이 찾아오면 무너져버립니다.

본문에는 다윗의 통치 말년에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3년 동안 기근이 있었다는 것은 거의 재앙에 가깝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여름에 비가 오지 않으면, 농작물이 타들어갑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에서 3년 동안 기근이 있었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물이 부족한 정도가 아니고, 땅이 완전히 황폐하게 되어 식물과 동물이 다 죽은 상태입니다. 사람도 살아남을 재간이 없습니다.
엘리야의 시대에 하늘 문이 닫히고,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3년 동안 기근이 왔다는 것은 갈 데까지 간 것입니다. 더 이상 밀려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상태까지 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어떤 징조들을 읽어야 합니다. 어려움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을 우연으로 보면 안 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속적으로 문제가 일어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의 사건이 해결되기 전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인생 가운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오는 어떤 문제들을 안고 있거나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은 채 문제가 지속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속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한두 달 정도면 끝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끝날 듯 하면서도 끝나지 않고, 계속될 때가 있습니다.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우연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일어나는 문제들을 우연으로 넘겨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어떤 것도 우연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해프닝(happening)이나 사고(accident)가 아닙니다.3년 동안 기근이 있었다는 것은 환경적인 요소에 의해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도해(圖解)를 해야 합니다. 해석을 해야 합니다. ‘무슨 의미일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원인이 무엇일까. 왜 이런 일이 내 인생 가운데에 발생할까. 왜 내 삶은 이렇게 힘들어지는가. 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또 다른 문제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인가.’라고 문제 속에 숨은 의미를 찾아내고자 해야 합니다. ‘내 운명이지. 내 팔자지. 인생이 그런 거지. 세월이 약이겠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어려운 문제가 반복되거나 지속되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일들에 대해 민감성을 가지지 않고 지나간다면, 굉장히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렇게 기록한 목적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시대와 시일이 분명히 기록되어있습니다. 기근이 끝나야 하는데,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때 다윗이 취한 행동을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여호와의 얼굴을 찾았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문제의 해답을 하나님에게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태도입니다.

문제가 생길 때, 우리가 어디에서 해답을 얻고자 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인생의 판도가 결정됩니다.
우리의 삶에 문제가 닥칠 때에 가장 먼저 누구를 찾는가에 따라 우리 인생의 행로가 바뀝니다. 핵심 인물(key person)을 정확히 찾아가야 합니다.

가나의 혼인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마리아는 그 날 그곳에서 중요한 인물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문제 해결의 핵심을 분명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해결사를 찾아야 하는데, 사람을 잘못 찾으면, 망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를 놓고 의논했을 때에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와주기보다는 오히려 이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퍼뜨려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로 찾아야 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사울은 어디로 갔습니까? 사울은 신접한 무당을 찾아갔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힘들어지자 그는 하나님께 뜻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는 무당을 찾아갔습니다.하나님의 응답이 없으면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나에게 응답을 주신다고 믿는다면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지 않고, 무당을 찾아갔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본문에 보면,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삶 가운데서 이런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22장에도 그런 장면이 있습니다. 사무엘하 22장 7절에 보면, 다윗은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찾은 것은 지금의 기근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 기근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구나.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진노하셨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기근이 3년 동안 계속된 것이 단순히 일어난 일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매우 뻔한 것 같지만,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실제 문제 속으로 들어가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놓칩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한 시점을 보세요. 본문 1절에 보면,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3년이 지나갔습니다. 물론 다윗이 그 이전에 하나님을 찾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본문 1절에서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께 붙들려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3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면, 그동안 별별 일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말라비틀어지고, 동물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려있었을 것입니다. 물의 근원이 말라버렸을 것입니다. 다윗이 기도한 시점, 하나님을 찾은 시점은 3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빨리 찾지 않는가를 보여줍니다. 얼마나 빨리 깨닫지 못하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다윗이 기도했을 때에 하나님이 즉시 돌이키시고, 기근이 끝납니다.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렀을 때, 끝자락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이것은 미련한 모습입니다. 미련함은 고난을 불러들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자주 발견하는 장면입니다.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데 고생한 것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미련함과 고집스러움이 화를 불러들이고, 광야에서의 기간을 계속 연장시켰습니다.애굽 왕 바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방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0가지 재앙이 있었다면, 갈 데까지 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는 장자가 죽고 난 후에야 손을 들었습니다. 메뚜기 재앙에서 끝내야지, 바로는 갈 데까지 갔습니다.제게도 이런 마음이 있을까봐 때로는 두렵습니다. 이것은 완악한 마음, 고집스러움입니다. 그래서 바로는 엄청난 재앙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징조를 보여주십니다. 항상 어떤 사인(sign)을 주십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 때에는 절대 갑자기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사인에 빨리 반응하지 않습니다. 더디 깨닫습니다. 여러분에게 깨닫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똑같이 앉아서 말씀을 들어도 다 듣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날의 말씀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몇 만 볼트의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듯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불이 임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심장을 관통해버립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인생이 변합니다. 모든 문제가 한순간에 끝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끊임없이 선포될 때, 말씀 안에서 레마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옵니다. 그러므로 둔감해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모릅니다.

본문에 보면, 3년 동안 기근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3년은 참혹한 시간입니다. 더 이상 갈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다윗이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피해가 커질 대로 커졌습니다. 아까운 세월을 놓치고 고생하다가 뒤늦게 깨달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많은 사인을 주십니다.

도로에 스피드 카메라를 설치해놓은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설치되어있음을 곳곳에서 알려줍니다.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다 볼 수 있도록 알려줍니다. 그런데도 카메라에 찍히는 차량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둔해져서 영적 감각이 무뎌져 있는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깨어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영혼이 하나님을 향하여 깨어있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깨닫기는 하지만, 너무 늦게 깨닫는 것이 문제입니다. 3년의 기근을 통해 너무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우리는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청년들을 귀중하게 여기는 이유는 그들이 빨리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이 제게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다 살고 난 후에 깨달으면 안 됩니다. 젊은 날에 깨달으면, 몇 십 년의 시간을 버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깨닫지 못하면, 몇 십 년이라는 시간이 휙 지나가버립니다.

본문의 사건 이후, 회복되고 난 후, ‘조금 일찍 깨달았더라면’하고 후회하지 않았을까요? 다윗은 ‘조금만 더 빨리 하나님 앞에 나아갔더라면’하고 후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늦었지만,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물었더니 하나님께서는 즉시 대답해주셨습니다. 3년 동안 왜 기근이 왔는가 하면,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특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 간구하니 하나님은 금방 답을 주셨습니다.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물으면 하나님이 즉시 답해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물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답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인간은 질문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은 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인간은 끝없이 질문하고 있고, 하나님은 끝없이 답해주십니다.

다윗의 질문에 하나님은 재앙의 원인을 알려주셨습니다.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나님은 정확한 답을 알고 계시고, 재앙의 원인을 알고 계셨습니다. 3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은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어떠한 일도 이유와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아십니다. 우리의 삶에서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삶에 일어나는 문제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문제의 원인을 묻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생각하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세월이 약이 되기도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오히려 문제가 더 꼬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시간이 갈수록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키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omniscience). 하나님은 전지(全知)하신 분이시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모르시는 문제, 하나님이 풀지 못하는 문제는 없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는데, 하나님이 모르시는 것이 있을까요? 하나님에게는 고난도(高難度)의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온 땅의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어설프게 알고 계시는 분이 아니고, 어떤 것이든 완벽하게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는 어설픈 것이 많습니다. 엉터리로 아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확신하는 것들 중에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아십니다. 문제의 원인을 아시고, 우리의 생각과 느낌도 아십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식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것은 잘 아시는데, 어떤 것은 잘 모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새로운 정보를 전해드리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새로운 것을 알려드려도 하나님은 놀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에게는 흑암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비밀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완전히 드러나 있고, 만물이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의문의 사건이 없습니다. 미제(謎題)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와 의혹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초기에 질문을 던지는 것은 삶에서 아주 중요한 태도입니다. 문제 초기에 하나님에게 질문하며, 하나님에게서 답을 찾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일상 속에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도 우리는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안다는 생각 때문에 낭패를 당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주 많습니다.

아이큐(IQ)가 높은 것이 낮은 것보다는 좋습니다. 그러나 머리가 좋기 때문에 세상을 복되게 살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잠언에 보면, ‘미련하다’는 말의 정의가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잠언에서 말하는 미련한 사람은 지혜가 모자란 사람이 아닙니다. 잠언에서는 자신의 머리를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를 ‘미련하다’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세상적으로 똑똑한 사람이 미련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머리, 똑똑함, 명석함을 믿고,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자들이 미련한 사람입니다.

세상을 보면, 세상적으로는 전문가인데, 인생에 어려운 문제가 닥치면, 낭패를 겪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똑똑하지만 자신의 꾀에 넘어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머리를 썼는데, 자기의 덫에 자신이 걸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유대인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훈련하는 것은 질문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이들에게 늘 질문하는 것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질문을 잘하는 것, 잘 묻는 것이 지혜입니다.
강의를 마친 후에 “질문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질문하는 사람은 그 강의를 잘들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식에 대한 갈망이 있는 사람이 질문합니다.

우리가 공부를 많이 하고, 세상적인 지식을 쌓아야 하지만, 우리가 똑똑하다고 해서 뭐든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서 배운 것이 대단해보여도 인생에 어려운 문제가 터지면, 속수무책입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소용없는 것 같고, 돈이 되지 않는 것 같아보여도 하나님의 지혜는 결정적인 순간에 진가를 발휘합니다.

우리가 은혜 받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지혜를 얻는 것이 평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문적인 것도 아니고, 지식적인 것과는 상관없습니다. 교회에서 리더를 하는 것이 직장에서 진급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결정적인 문제가 생기면, 그것이 빛을 발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어려움을 당할 때,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끝 부분에 보면, 바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죄수로 끌려가고, 아무런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나중에는 모든 사람이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진 지혜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직장 속에서도 자신이 직원이라고 해서 움츠러들 이유가 없습니다. ‘언젠가는 사장이 내 덕을 볼 날이 올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회사가 경영난에 허덕일 때, ‘이것은 사장의 일이다’라고 생각하며 가만히 있지 말고, “하나님, 제게 답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면, 위기의 때에 오히려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하나님의 말씀보다 지혜로운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께 여쭙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문제가 터지기 전에 하나님께 묻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문제가 터지고 난 후에 하나님께 묻습니다. 꼬일 대로 꼬이고, 죽기 직전까지 가서야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새벽기도에 나오는 성도 중 목회자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기도하러 나오던 사람이 열심히 나오지 않으면 걱정하게 되지만, 평소에 기도하러 나오지 않던 사람이 나오면 더 걱정하게 됩니다.

문제가 생기면, 초기에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께 묻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시점에 물어야 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께 더 엎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그런데 이대로 잘하지 않습니다. 인생에서 문제를 만났을 때, 초기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주 지혜로운 것입니다. 고생을 줄이는 것입니다.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대목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강력하게 듣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가서야 되돌리는 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묻는 사람에게 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해결의 길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문제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지금 어려움을 당한 분이 계십니까? 그것이 나로부터 온 것인지, 나로부터 왔다면 그것이 어떤 문제인지 고난의 원인을 파악해야 합니다.

요나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다시스로 가는 배에 왜 풍랑이 일어났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배 밑창에서 자고 있는 요나를 정확히 끄집어내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연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풍랑이 누구로 인해 일어난 것인지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자신 때문에 풍랑이 일어났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요나는 물에 빠졌습니다. 자신이 바다에 던져짐으로 더 혹독한 상태에까지 이르지 않도록 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혼자 끙끙대지 마십시오. 시간을 보내며 사태를 악화시키지 마십시오. 그것은 미련한 행동입니다. 일을 키우지 마세요. 하나님께 질문하세요. 하나님으로부터 답을 얻으세요. 왜 이렇게 어려움이 오는지, 삶이 왜 이렇게 힘든지, 미련함과 둔감함으로 삶의 문제를 오해하지 마세요.

생각하거나 머리를 쓴다고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답은 오직 하나님만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묻기만 하면, 간단하게 끝날 것을 오래 끌지 마세요.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무엇이 문제입니까? 제가 지금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갈 길을 모르겠습니다. 지혜를 주십시오. 확신을 주십시오. 핵심이 무엇입니까?”라고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묻자마자 하나님은 다윗에게 답하셨습니다. 다윗의 간구에 하나님은 빨리 응답하셨습니다.
여호수아 9장에 보면, 본문의 역사적인 배경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기브온 족속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 속에 기브온 족속과 화친을 맺습니다.
본문에 보면,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그들은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원주민들과는 다르게 이스라엘에 투항합니다.

기브온 족속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속여서 화평의 조약을 맺고 살아남은, 문제 있는 족속이었습니다. 속임수를 썼지만, 이들과 화친조약을 맺은 것 때문에 여호수아는 이들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보호해주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래서 기브온 백성들이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섞여 살면서 잡역을 감당해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서도 이들에게 속아서 화친조약을 맺은 것에 대해 굉장히 논란이 많았고, 이것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베냐민 지파는 기브온 족속의 생존에 대해 늘 불평했습니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 출신의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기브온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함께 맺었던 여호수아의 언약을 깨어버리고, 기브온 족속들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속아서 화친을 맺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약을 깨고, 기브온 족속을 죽이고 학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기근의 이유를 묻자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여호수아와 기브온 족속이 맺은 평화의 조약을 깨고, 사람들을 죽인 죄의 결과로 기근이 온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즉시 기브온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의 대답을 듣고 난 후 취한 행동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해야 속죄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습니다. 다윗은 기근이 온 것이 기브온에 대한 이스라엘의 죄로 인한 것이라면, 당연히 어떤 배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베냐민 사람 일곱 명의 목을 요구했습니다. 베냐민 사람 일곱 명의 목을 베어오라는 것입니다.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일곱 남자를 택하여 여호와 앞에서 목메어 달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그들의 청을 들어주었습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왕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해결책을 듣기보다는 먼저 기브온 사람들을 만나 해결책을 모색하는 다윗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다윗은 기도를 끝내자마자 기브온 사람들을 만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서 기근의 원인을 알았다면, 그 문제를 푸는 방법도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기근의 원인을 알고 난 후, 금방 돌이켜서 기브온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해답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성급했습니다. 문제의 원인도 하나님으로부터, 해결 방법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다윗은 조급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행동했습니다. 인간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이스라엘의 문제 해결방식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물으면, 하나님이 해결방법을 알려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에 중요한 것은 반쪽만 받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에는 온전히 받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끝까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일곱 명의 남자가 처형되었습니다. 다윗은 일곱 명의 남자를 처참하게 죽여 시체를 매달아놓았습니다.
여기에 리스바의 아들이 두 명 포함되는데, 리스바는 사울의 첩이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다윗과 사울가가 이상하게 얽히게 됩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아들들의 죽음으로 인해 매일 시체 앞에서 떠나지 않고 통곡했습니다. 두 아들의 죽음 앞에서 한 여인의 한 맺힌 통곡과 절규하는 모습이 온 나라에 알려졌습니다.

무력한 한 여인이 아들들의 유해 앞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다윗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가에 대한 예후를 하게 됩니다. 다윗은 민심을 수습하며 임시로 매장되어있던 사울과 요나단의 뼈를 고향 열조의 묘실로 이장했습니다. 이를 통해 사울 왕가에 대해 배려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실수가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통하여 사울과 다윗 왕가에 맺혀있던 것을 다 풀고 난 후, 14절에 보면,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령을 따라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풀리지 않았던 문제가 풀렸습니다.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유해를 거둬 안장한 후에 비로소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습니다. 이런 일들로 인하여 기브온의 오래 묵은 원한도 일단락되고, 사울 왕가에 대한 예후와 배려를 통해 역사적으로 꼬여있던 문제가 풀리자, 기근이 끝났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무엇인가 어려움이 계속되고, 악순환이 지속될 때, 미련하게 몸으로 부딪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월이 간다고 약이 되지 않습니다. 운명이라고 여기고 세월을 보내면 안 됩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왜 내 삶이 이렇게 꼬여있는가”를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빨리 풀수록 좋습니다. 욥기에 보면, 욥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욥의 고난이 지속되고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것이 언제입니까? 욥기 42장 10절에 보면,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욥이 자신의 친구들에게 용서를 베풀고, 그의 마음에 있던 원한을 제거하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곤경을 돌이키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자신의 삶을 떠나지 않는 문제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윗이 기브온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울 왕가와 꼬여있던 것을 풀었습니다. 하나님이 결정적인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문제가 오랫동안 복잡하게 꼬여있었지만,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을 보면, 굉장히 급박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가 복잡해보여도 해결은 간단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몰라서 고통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슨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인생 가운데 찾아오는 수없이 많은 문제를 어떤 태도로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묻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분명한 답을 주실 수 있으십니다. 묻는 것이 곧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묻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완벽한 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찾아 해답을 얻기 원하시는 여러분들은 이미 복된 분이신 줄 믿습니다.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찾아오면, 무조건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앞으로도 우리의 인생 가운데 수없이 많은 문제가 파도처럼 밀려올 것입니다. 문제없는 인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걸어가는 삶 속에서 우리가 무지와 연약함을 가지고 살아갈 때, 불가피하게 찾아오는 문제들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문제가 생겼을 때에 즉각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간을 끌면 안 됩니다. 자신의 삶에 찾아온 고통이 목까지 차오를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 반응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인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징조를 보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빨리 찾아야 합니다. 초기에 하나님께 질문하세요. 초기에 답을 얻으세요.

하나님은 오랫동안 징계하시기를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간 끌고 가시기를 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단 2주 정도면 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미로를 만드셔서 우리를 고생시키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쓸데없는 고난을 당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쓸데없이 고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것에든 아주 명확하게 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답을 구할 때에는 겸손하게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순종하겠습니다.”라는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모든 문제가 풀리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응답 받으시기 바랍니다. 꼬인 것들이 풀리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랫동안 묶여있던, 복잡한 문제가 해결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문제를 오랫동안 끌고 갈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정확하게 묻는,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일상을 살아갈 때, 우리의 삶에 수없이 많은 어려움들을 예방하게 되고,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 속에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은혜가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있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묻고 또 물으시면, 하나님은 정확하고 완벽한 답을 우리에게 알려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문제 발생 초기에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민감함을 유지하셔서 여러분의 삶이 갈수록 풍성해지는 축복이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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